바벨의 균열
한국 건강보험은 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가
피터르 브뤼헐이 1563년에 그린 〈바벨탑〉을 멀리서 보면 그것은 위대한 인간 의지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거대하며, 정교하고, 하늘에 가까이 닿아 있다.
그러나 화폭에 코를 가까이 대 보라. 토대는 기울어져 있고, 벽돌은 균질하지 않으며, 어떤 층은 이미 무너져 흙더미가 되어 있다. 위쪽 층들은 아래쪽이 견딜 수 없는 무게다. 그림은 완공의 영광이 아니라 완공되지 못할 운명을 그리고 있다.
지금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와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자랑스럽다. 1977년 시작되어 1989년 전 국민으로 확대된 단일보험. 한국 사회가 지난 50년 동안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약속 중 하나.
가난한 사람도 같은 병원에서 같은 의사에게 같은 약을 받는다는 약속.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균열이 보인다.
1. 숫자가 말하는 것
먼저 한 가지 통념부터 깨야 한다. 한국 건강보험이 발전하고 있다는 통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4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건강보험 보장률은 64.9%로 전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보장률은 2015년 63.4%에서 2024년 64.9%로 10년간 1.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64~65%대에서 큰 변동 없이 정체돼 있다.
10년 동안 1.5%p. 이것이 한국 건강보험의 실제 성적표다. OECD 평균 76.3%를 향해 가는 길은 멀고, 가까워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70%”라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도달하지 못했고, 다음 정부에서는 오히려 떨어졌다. 2023년 보장률은 64.9%로 전년 대비 0.8%p 하락했다.
왜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가. 그 이유 안에 한국 의료의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
정부가 급여 영역을 확대해도, 비급여 시장이 더 빠르게 커지면서 전체 보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2023년 15.2%에서 2024년 15.8%로 0.6%p 상승했다. 다시 말해, 정부는 댐을 쌓고 있지만 물은 다른 길로 흐른다. 건강보험이 어떤 항목을 급여로 편입시켜도, 의료 시장은 곧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영역으로 자본과 인력이 이동한다. 정부의 정책은 늘 한 발 늦는다.
보장률 64.9%, 그 뒤편의 35.1%가 한국 의료의 어두운 부분이다. 그곳에는 가격 통제도, 진료량 통제도, 정부의 시선도 닿지 않는다.
2. 자기강화 순환 — 어떻게 균열이 균열을 키우는가
그 35.1%의 그늘 안에서 한국 의료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의 동력으로 굴러가는 순환.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순환.
비급여 팽창 → 필수의료 공동화 → 사보험 의존 심화.
1단계: 비급여 팽창.
비급여란 무엇인가. 도수치료, 비타민 주사, 일부 MRI, 고가 항암제, 그리고 끝없이 늘어나는 “신의료기술”의 영역이다. 비급여인 도수치료는 병원이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해 도수치료에만 병원비가 1조 3천억 원 넘게 쓰였고, 전국 평균 도수치료 비용은 11만 3천 원이다. 11만 3천 원짜리 치료를 환자가 10번 받아도 본인은 거의 돈을 내지 않는다. 실손보험이 갚아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의료의 가장 기묘한 풍경이 드러난다. 2024년 실손보험 지급보험금 15.2조 원 가운데 비급여 주사제(2.8조 원)와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 질환 치료(2.6조 원)가 전체의 35.8%를 차지했다. 암 치료 등 다른 치료 보험금을 크게 상회한다.
다시 읽어보라. 암 치료보다 도수치료에 더 많은 보험금이 나간다. 누군가가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보다, 누군가의 허리가 결리는 순간에 더 많은 자본이 흘러간다. 이것이 한국의 비급여 의료 시장이다.
2단계: 필수의료 공동화.
비급여가 자라면, 의료 인력은 그쪽으로 쏠린다. 비급여는 가격 규제가 없고, 보험사가 빠르게 갚아주며, 환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가장 합리적인 진료다. 그래서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의 신규 의사들이 응급실 야간 당직 대신 도수치료실을 선택한다.
그 결과는 2024년 의료대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응급실은 마비됐고, 어떤 환자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길에서 숨졌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됐다. 의대 증원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일으킨 충돌은 표면적 갈등이었고, 그 아래에는 더 근본적인 진실이 있었다.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의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비급여가 더 많은 돈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별 의사의 탐욕이 아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3단계: 사보험 의존 심화.
비급여가 자라고, 필수의료가 약해지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매달 사보험료를 더 내기 시작한다.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약 4,000만 명. 우리나라 총 진료비 133조 원 중 실손보험이 14.1조 원, 즉 10.6%를 부담한다.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은 2024년 기준 약 78.1%. 한국인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미 민간보험을 가지고 있다
이 숫자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면서 무겁다. 한국은 이미 절반 민영화된 의료국가다. 공보험이 65%를 보장한다지만, 그 보장률 뒤편에는 4,000만 명이 매달 사보험료를 내며 나머지 35%, 특히 비급여 영역을 메우고 있다.
그리고 사보험이 자라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간다. 보험사가 비급여 치료를 갚아주기 때문에, 병원은 더 많은 비급여 치료를 권하고, 비급여 시장은 더 빠르게 자라며, 의료 인력은 더 많이 그쪽으로 이동하고, 필수의료는 더 비어간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사보험에 더 의존한다.
세 단계가 서로를 강화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한국 의료의 자기강화 순환이다.
3. 추세선이 가리키는 곳
그 순환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 여러개의 추세선이 한 점에서 만난다.
2020년 86조 9,544억 원이던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는 4년 만에 약 29조 2,964억 원, 즉 33.7%가 증가해 지난해 116조 2,509억 원까지 늘었다. 외래 진료비는 2024년 51조 5,044억 원으로 2020년(36조 2,148억 원)보다 42.2% 증가했다. 4년 만에 30조 원이 늘었다는 의미는 단순하다. 한국인들이 그만큼 더 자주, 더 비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그 비용을 건강보험이 감당해왔다는 뜻이다.
실손보험 쪽 추세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2년 12.9조 → 2023년 14.1조 → 2024년 15.2조.
매년 1조 원 이상씩 자라고 있다. 보험료 인상률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랐다. 2022년 14.2%, 2023년 8.9%, 2024년 1.5%, 2025년 7.5%, 2026년 7.8% 등 최근 5년간 누적 인상률은 46.3%에 달한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추세선은 다른 곳에 있다.
인구 피라미드.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20% 이상)에 진입했고, 의료비가 가장 많이 드는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보험료를 내는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의료비는 늘어난다.
세 추세선이 한 점에서 만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누적 준비금이 2028년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가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서 제기되었고, 2030년까지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료 인상이나 보장성 축소 등의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정부 안에서도 커지고 있다.
번역하면 이렇다.
“앞으로 4년 안에 한국 건강보험은 적자로 돌아서고, 5년 안에 준비금을 다 쓰며, 10년 안에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요구받는다.”
정부가 지난 두 해(2024, 2025년) 연속으로 보험료율을 동결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었지, 재정의 여유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4. 그림자 보험의 잔혹한 진실
공보험이 흔들린다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이미 가 있었다. 실손보험으로.
실손 보험은 흔히 “제 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며, 한국 의료의 두 번째 탑이다.
그런데 잔혹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의료패널(2019–2023년) 데이터로 분석한 연구 결과, ‘실손 담보 포함 여부’로 좁혀 분석했을 때 실손보험은 잦은 병원 이용에 따른 소액 보장에 집중되어 정작 가계 재정을 뒤흔드는 ‘큰 병’이나 ‘재난적 상황’에서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보험료 역습’이다. 가계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률이 1%p 증가할 때마다 과부담 의료비 발생 위험은 약 1.16배 상승했다.
다시 말해, 4,000만 명은 매달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정말 큰 병이 닥쳤을 때 그 보험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다. 작은 병에 작은 도움이 되고, 큰 병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가입했기에 해지하지 못한다. 보험료는 매년 오른다. 자본은 점점 한쪽으로 흐른다.
또 하나 알아둘 사실. 실손보험의 의료이용량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지급받는다. 무사고자를 포함하여 전체 가입자의 93.2%는 평균 보험금(62만 원) 미만을 지급받는다. 즉, 4,000만 명 중에서 400만 명이 보험금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고, 나머지 3,600만 명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받는다. 그것이 보험의 작동 원리이긴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비대칭은 점점 커진다. 의료 쇼핑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격차. 부지런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격차. 그리고 이 차이를 메우는 것은 모두의 보험료다.
5. 미국이라는 거울
이 모든 풍경 — 비급여의 팽창, 필수의료의 공동화, 사보험의 거대화, 그리고 그 안의 불공정 — 은 한국이 처음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이미 60년 전에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 그 완성본을 살고 있는 나라가 있다.
미국.
미국은 1965년 메디케어(노인)와 메디케이드(빈곤층)를 도입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을 위한 단일 공보험은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민간보험사들이 메웠다. 60년이 지난 지금, 2025년 10월 카이저 가족재단(KFF)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직장 가입 가족 건강보험의 연간 보험료는 26,993달러에 달했다. 노동자가 평균 6,850달러를 부담하고, 1인 보험은 1,886달러를 부담한다. 한국 돈으로 가족 보험료가 연 약 3,700만 원. 한국의 4인 가구 중위소득의 절반에 해당한다.
미국식 모델의 정점에는 한 회사가 있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UnitedHealth Group)은 2024년 한 해 4,003억 달러(약 580조 원)의 매출을 올렸고, 144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사이버 공격 비용을 제외한 조정 이익은 257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였다.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병원을 가지고, 약을 가지고, 의사를 가진다. 환자가 보험료를 내고, 그 돈이 보험사 계열 병원으로 흘러가며, 보험사 계열 약국에서 약을 사고, 그 차액이 보험사의 이익이 된다.
그리고 2024년 12월, 그 회사의 보험 부문 CEO 브라이언 톰슨이 뉴욕 한복판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용의자의 탄피에는 보험사가 청구를 거절할 때 쓰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Deny. Defend. Depose. (거부하라. 방어하라. 진술을 받아내라.)
미국은 한국의 거울이다. 단, 시간을 50년 앞당겨 비추는 거울이다. 거기 비치는 미래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인지, 우리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결정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6. 무너지지 않은 약속, 그러나 흔들리는 약속
이 글이 묻고 있는 것은 한국 건강보험이 내일 무너진다는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서 있다. 균열이 갔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이 묻고 있는 것은 균열의 방향이다.
비급여 팽창 → 필수의료 공동화 → 사보험 의존 심화.
이 세 단계가 서로를 키우는 순환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누구도 이 순환을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순환은 스스로의 동력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정부의 모든 개입은 한 발 늦는다 — 도수치료를 관리급여로 끌어들이면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이 자라난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그 의사들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경로다.
한국 의료는 명시적인 민영화 입법 없이도, 누가 “민영화하자”고 외치지 않아도, 사실상의 민영화 경로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민영화. 토론도 합의도 없는 민영화. 그것이 한국 의료의 현재 상태다.
브뤼헐의 바벨탑이 만약 실제로 무너졌다면, 그 잔해 위에는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 새로운 건물의 주인은 누구일까. 가장 빨리, 가장 정교하게, 가장 오래 준비해온 자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무너지는 만큼, 그 빈자리는 거대해진다. 4,000만 명이 이미 사보험에 가입해 있다. 비급여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로 자란다. 정부의 재정 부담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떤 회사들은 이미 1985년에 땅을 사고, 1994년에 병원을 짓고, 2003년에 청사진을 그리며, 2024년에 다시 그 청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균열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균열은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With health, everything is a source of pleasure; without it, nothing else, whatever it may be, is enjoyable."
— Arthur Schopenhauer, Aphorismen zur Lebensweisheit (1851)
건강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즐거움의 원천이지만, 건강이 없다면 그 무엇도 즐길 수 없다.
이 기사는 그 '모든 것'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