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의 불
빅테크는 데이터를 약으로 바꿀 수 있는가
1669년 함부르크. 파산한 상인 헤닝 브란트는 지하실에서 소변을 끓였다. 오줌의 황금빛 속에 진짜 금이 숨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당대 연금술에서 색은 곧 본질이었다. 수천 리터를 졸이고 증류하며 그가 찾은 것은 납을 금으로 바꾸고 죽음을 미루는 현자의 돌이었다.
그가 얻은 것은 금이 아니었다. 플라스크 바닥에서 어둠을 밀어내며 스스로 빛나는 흰 물질, 인(燐)이었다. 고대 이후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새 원소. 브란트는 그것이 무엇인지 끝내 몰랐고, 다만 팔릴 물건이라는 것만 알아 제조법을 비밀에 부친 채 돈을 받고 넘겼다.
100년 뒤 조지프 라이트는 그 밤을 그렸다. 어두운 방, 무릎 꿇은 노인, 그 앞에서 터져 오르는 창백한 빛. 노인은 두 손을 든 채 그것을 올려다본다 — 경배인지 경악인지 모를 자세로. 그는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손에 쥔 것은 진짜였다.
2026년의 실리콘밸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방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회사들이 똑같은 자세로 무릎 꿇고 있다. 그들의 플라스크는 데이터센터이고, 끓이는 것은 소변이 아니라 수십억 개의 단백질 구조와 세포 영상이다. 그리고 그들이 찾는 것은 브란트와 정확히 같다.
모든 병을 푸는 돌.
1. 화로에 불이 붙다
왜 이토록 많은 돈이 이 지하실로 몰리는가. 신약 하나가 실험실에서 약국까지 오는 데는 평균 10년 이상, 임상 진입 후 실패율은 90%에 육박한다. 실패한 후보까지 얹으면 승인된 약 한 알의 실제 원가는 약 26억 달러다. 인류가 만든 가장 비효율적이면서 가장 수익성 높은 도박 — 바로 그 비효율이 자본의 눈에는 황금맥으로 보인다.
숫자가 열기를 증명한다.
2019년 이후 흘러든 돈 약 600억 달러, 연간 벤처 투자만 80억 달러.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에 오른 AI 신약 후보는 200개에 육박한다. 젠슨 황이 3월 무대에서 남긴 말이 이 논리를 압축한다.
“가속 컴퓨팅은 칩의 문제가 아니다. 도메인 특화 가속만이 답이다.”
그리고 그 도메인이 신약이 됐다만, 이 글이 끝까지 붙들 하나의 숫자를 먼저 못박아 둔다.
FDA 승인을 받은 AI 설계 신약은, 아직 0건이다.
2. 무릎 꿇은 다섯
구글 — 돌을 직접 빚는 자.
딥마인드에서 갈라져 나온 아이소모픽 랩스는 도구가 아니라 돌 자체를 노린다.
뿌리는 하사비스에게 2024년 노벨화학상을 안긴 알파폴드.
2026년 5월 시리즈 B에서 21억 달러를 조달했다 — 바이오 스타트업 역사상 두 번째 규모다. 투자자 명단에 전통 바이오 벤처는 하나도 없다. 노바티스·릴리·J&J와의 파트너십은 약 30억 달러. 하사비스는 목표를 “모든 병을 푸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가 설계했다는 약이 무엇인지는 비밀이고, 첫 임상은 2025년 말에서 2026년 말로 밀렸으며, 아직 그 약을 투약받은 환자는 한 명도 없다.
아마존 — 지하실을 임대하는 자.
AWS는 돌을 빚지 않는다. 4월 공개한 아마존 바이오 디스커버리는 40개 넘는 바이오 모델과 AI 에이전트로 in silico(컴퓨터 속)에서 후보를 설계하고, 곧바로 젖은 실험대 (Wet Lab)의 검증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 고리로 묶는다. 슬로언 케터링과의 협업에서 나노바디 후보 30만 개를 생성해 상위 10만 개로 좁혔다 — 몇 주 만에. 기존이라면 1년 걸릴 일이다.
이미 상위 제약사 20개중 19개는 AWS 위에 올라 있다. 아마존이 파는 것은 약이 아니라, 그 약을 만들 사람이 부족한 바로 그 자리다.
엔비디아 — 불을 파는 자.
골드러시의 진짜 부자는 곡괭이를 판 자였다. 엔비디아의 바이오니모는 신약을 찾는 모든 이가 빌리는 화로다. 릴리는 5년 10억 달러 규모 공동 랩과 GPU 1,016개짜리 슈퍼컴퓨터를 세웠고, 로슈는 블랙웰 GPU 3,500개 이상을 깔아 제약업계 최대 ‘AI 팩토리’를 지었다. 누가 금을 찾든, 불을 판 자는 이미 이겼다.
오픈AI·앤트로픽 — 언어로 짓는 자들.
가장 늦게, 가장 빠르게 들어섰다. 오픈AI의 GPT-로절린드 — DNA 이중나선에 기여하고도 잊혔던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이름을 딴 생물학 추론 모델 — 는 바이오 벤치마크에서 0.751로 경쟁 모델들을 앞섰다. 고객은 암젠·모더나·써모피셔.
앤트로픽의 클로드 포 라이프 사이언스는 실험 프로토콜 이해도(0.83)에서 인간 기준선(0.79)을 넘겼고, 전 제넨텍 과학자들의 신약 스타트업 코이피션트 바이오를 4억 달러에 사들였다. 언어 모델 회사가 젖은 실험실 (Wet Lab)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구글은 돌을 빚고, 아마존은 방을 빌려주고, 엔비디아는 불을 팔고, 두 언어 모델은 도구를 짓는다. 세계에서 가장 자본이 두터운 다섯이 같은 지하실에 무릎 꿇었다.
3. 빛나는 것은 금이 아니다
빛은 진짜다. 인실리코 메디슨의 렌토서티브는 AI가 표적을 찾고 AI가 화합물을 설계한 최초의 약으로 특발성 폐섬유증 임상 2상을 통과했고, 그 결과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렸다.
임상 1상만 보면 AI 설계 약의 성공률(80~90%)은 역사적 평균(40~52%)을 크게 웃돈다.
그러나 표본은 작고, 그림자도 함께 자란다.
엑스사이언시아의 DSP-1181은 1상 이후 무너졌고, 리커전은 2025년 REC-994를 중단했다. 무엇보다 제약의 꿈이 죽어 나가는 자리 — 임상 3상 — 를 AI가 통과시킬 수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임상에 오른 200개, 3상까지 도달한 15개. 그리고 승인 0건. 분석가들은 첫 승인을 2027~2028년, 확률 약 60%로 본다.
인은 진짜 원소였다. 그러나 인은 금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플라스크에서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4. 성냥이 될 것인가
라이트의 노인은 금을 찾다 금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우연히 쥔 인은 훗날 성냥이 되고, 비료가 되고, 생명의 DNA를 이루는 뼈대가 됐다. 그가 실패한 그 밤에 근대 화학이 태어났다. 연금술은 사기였으나, 그 불 속에서 진짜 과학이 걸어 나왔다.
2026년의 다섯 연금술사도 같은 자리에 있다. “모든 병을 푼다”는 돌을 약속했고, 아직 손에 쥐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과정에서 만든 것 — 몇 주 만에 좁혀지는 30만 개의 후보, 인간을 넘어선 프로토콜 이해, 사람이 볼 수 없던 표적 — 은 인처럼 진짜다.
문제는 그것이 성냥이 될지 또 하나의 아름다운 헛불이 될지를, 오직 인체만이 판정한다는 데 있다.
돈은 발견을 가속하고 컴퓨팅은 후보를 쏟아낸다. 설계는 in silico에서 눈부시다. 그러나 약은 결국 in vivo — 살아 있는 몸 안 — 에서 판정되고, 생물학은 자본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승인 0건이라는 숫자는, 컴퓨터 속의 광채와 몸속의 진실 사이에 아직 건너지 못한 강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자연이 아직 명령받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다.
브란트는 소변 속에 금이 있다고 믿었다 — 색이 곧 본질이라고. 지금 우리는 데이터 속에 약이 있다고 믿는다 — 상관관계가 곧 인과라고. 어쩌면 맞을 것이다. 어쩌면, 색은 색일 뿐이었을 것이다.
플라스크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연금술사는 아직 두 손을 든 채, 그것이 금인지 인인지 알지 못한다.
"Nature, to be commanded, must be obeyed."
— Francis Bacon, Novum Organum (1620)
자연은 복종함으로써만 정복된다.
브란트가 소변에게 금을 명령했듯, 다섯 빅테크는 데이터에게 약을 명령한다.
그러나 자연은 명령이 아니라 복종에만 답한다.
후보물질이 아무리 눈부셔도, 그것이 진짜 약인지를 정하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의 몸이다.
승인 0건이란, 아직 아무도 그 몸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